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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해외 여행 정보/한국 서울 5대 궁궐

창덕궁, 후원 역사, 예약 사이트, 입장 시간, 한복 대여 정보 정리

by 랑카위 여행 2021.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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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은 5개의 서울 고궁 중에 보존이 가장 잘 되어있는 궁궐로 유네스코에 세계 문화유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후원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평안한 설계로 과거 왕들과 시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경복궁 역사, 볼거리, 코로나 야간 개장 정보

 

창덕궁 역사, 알면 유익한

창덕궁은 1405년 세 번째 왕인 태종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경복궁 다음으로 지어진 고궁으로, 경복궁이 궁궐로 구실을 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한 (화재, 전쟁 등 큰 재난) 궁궐로 이궁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특히, 창덕궁, 창경궁을 좀 헷갈려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창경궁은 1484년(성종 15년) 정희왕후, 안순왕후, 소혜왕후 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한 별궁으로 건립되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불타 없어진 후 경복궁이 중건되지 않고 창덕궁과 창경궁만 재건되어 창덕궁이 정궁의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인접해있는 창경궁은 왕실의 생활공간으로 활용하였습니다. 예전에는 두 궁이 경계 없이 하나의 궁궐로 사용하였으며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다 하여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쳐 동궐이라 불렀습니다.

가장 오래 왕들이 머물렀던 법궁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했었습니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입니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 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창덕궁의(昌德宮) 의미는 덕의 근본을 밝혀 창성하게 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창덕궁 지도
유교의 형식을 탈피한 법궁 창덕궁

 

창덕궁 후원의 역사

1406년에,  후원 동북쪽에 해온정(解溫亭)을 짓고 그 앞에 못을 팠으며, 후원 북쪽에는 인소 전(仁昭殿)을 지은 것을 시초로 보고 있습니다. 세조가 1459년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기면서 후원에 새로운 못을 팠으며, 1463년 창덕궁 후원을 크게 확장하였는데 1462년에 계획하였던 동쪽 담에 인접된 민가 73구(區)를 철거하고, 다시 북쪽 담에 인접한 민가 58구(區)를 철거하면서 지금 규모의 후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창덕궁 후원의 명칭에 대하여는 역대 왕조실록에 후원·북원·금원(禁苑) 등이 보이는데 후원이라 부른 것이 가장 많다. 비원(秘苑)이란 명칭은 1904년(고종실록 광무 8년 7월 15일)부터 발견됩니다. 느긋하고 여유 있는 공간이며 스스로 넉넉함을 느낄 수 있는 수양지이고 학업의 수련장이기도 한 창덕궁 후원은 우리나라 조원 문화(造苑文化)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 정원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합니다.

창덕궁 후원
창덕궁 후원 모습

창덕궁 중요 건물들 (알고보면 틀린)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

돈화문은 『중용(中庸)』의 “소덕천류(小德川流) 대덕돈화(大德敦化)”에서 따온 이름으로, 왕이 큰 덕을 품어, 세상을 다스리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제1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유교 철학을 충실히 담은 광화문은 남쪽, 궁궐의 아래, 중앙에 위치하나, 돈화문은 유교 국가의 법궁으로서 지리적인 환경에 맞춰 지어졌습니다. 조선 초기 때에는 유교 자체가 새로운 왕조를 창출하는 주요 사상으로 받들어졌으나, 이러한 의미가 퇴색, 유교는 선비, 유생 세력이 왕을 견제하는 도구로도 사용되고, 조선의 왕들은 이러한 유교의 사상에 염증을 느끼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뇌피셜 해 봅니다. 중앙은 왕이 지나가는 문입니다. 

창덕궁 정문 돈화문
창덕궁 정문 돈화문

 

창덕궁 가장 큰 건물 인정전(仁政殿)

경복궁의 근정전처럼, 정치적인 국가의 대사, 대외 큰 행사를 진행하는, 왕의 대외 사무공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왕의 즉여식, 해외 사신 접견, 과거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인정전 뒤는 응봉에서 내려오는 경사지의 끝자락이 낮은 언덕을 이루고 있는데, 즉 건물 뒤를 산이 배경을 이루고 있는 셈인데, 이런 모습은 신라 말 이후 불교 사찰의 불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방식이며 궁궐에서는 유일합니다. 창덕궁의 독특한 진입 방식이나 정전 뒤에 언덕을 둔 것은, 지형 조건을 살리고 고려 이전부터 내려오는 건축 배치의 관습을 계승한 결과로 풀이되는데, 조선은 유교 국가이지만, 오랜 불교의 관습을 버리지는 못한 거 같네요.인정(仁政)'은 '어진 정치'라는 뜻이며,

인정전
금천교를 지나면 인정전

 

왕의 집무실 선정전((宣政殿)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이라 불렀는데, 1461년(세조 7)에 선정 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왕의 집무실답게, 정치와 교육을 널리 펼친다"의 의미입니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을 헐어 그 재목으로 재건하였다.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을 비서실, 부속실로 이용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았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뒤편의 희정당으로 편전 기능이 옮겨 가면서 순조 이후에는 이곳을 혼전(魂殿, 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죽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왕의 집무실답게, 유일하게 청색 기와로 되어있습니다.

선정전
왕의 집무실 선정전 

 

 

왕과 시민이 사랑하는 곳 "창덕궁 후원"

창덕궁 후원은 주례 고공기에 의거하여 세웠던 경복궁이나 중국의 궁궐과는 다른 풍수지리사상이 반영된 가장 한국적인 궁궐의 모습을 보여주는 곳으로, 이는 창덕궁이 법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상왕을 비롯한 왕실 어른들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세워졌던 궁궐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창덕궁이 주는 편안함은 역대 왕들이 창덕궁을 가장 선호했고,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을 재건하지 않고 창덕궁을 법궁으로 삼았던 동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초기 왕조 설립 때, 형제의 난으로 서로를 죽였던 사건이 발생한, 경복궁을 왕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고, 사학자가 말한 기억이 나네요.

 

창덕궁 후원 예약 입장 시간, 입장료 정리

기본적으로 매주 월요일은 휴일입니다. 또한 코로나로 인해, 입장 인원이 전에보다 많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은 휴일이며, 성인은 3천 원이고, 학생은 1500원, 7세 미만은 무료입니다. 관람 시간은 10시부터입니다.

창덕궁 입장은 크게, 창덕궁 일반 투어와 후원 입장으로 되어 있으며, 후원의 경우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매우 빨리 예약이 완료되기 때문에, 최소 2주 전에 해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입장 시간, 예약 관련 정보는 창덕궁, 후원 예약 사이트를 아래 공유하오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서울 고궁 예매 사이트 정보 정리

 

창덕궁 한복 대여

창덕궁을 방문하는 가장 편한 방법은 3호선 안국역에서 3번 출구에서 출발 돈화문 매표소에 약 150M 경로를 이용하는 겁니다. 안국역 근처로 200~500m 이 내에 한복 대여점이 있습니다. 맵에 있는 것보다, 실제로 더 많이 있습니다. 

 

가격은 시간당 10000~15000원 정도입니다. 한복의 품질과 디자인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더 비싼 곳도 있는데, 평균적인 가격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아래에 대략적인 창덕궁 한복 대여점들의 위치와 3군데의 가격 정보를 공유하오니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창덕궁도 한복 입장시 무료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창덕궁 한복대여 가격
창덕궁 한복대여 가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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